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비채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재해석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숨 쉬게 하고 분노로 일그러지게 하고 사소한 것들에게조차 웃음 지을 수 있게 만든다. 더욱이 그러한 사람이 경탄해마지않는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나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 7. 26~1961. 6. 6) 정도라면,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이 작품을 선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살인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Murder)』은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의 주요 이론들과 프로이드-융의 애증관계를 기본 모티브로 하여 전형적인 추리소설 플롯을 가미한 장편소설이다. 1909년 미국의 연쇄살인사건을 때마침 클라크대학의 명예박사 수여식으로 방미(訪美)해있던 프로이드와 융이 직접 분석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자극적인 기존 추리소설들에 지쳐 있던 지적인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기존의 추리소설들이 추구하던 지나친 폭력성․잔혹성에 비하여는 상당 부분 신사적인 구성을 자임함과 동시에 플롯의 대부분을 20C 벽두의 미국을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현실적인 묘사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철학을 풀어쓰는데 주력하고 있다.

  작품 속의 프로이드는 인간적이다못해, 범인(凡人)들만큼이나 결함을 지닌 인간이다. 융은 이 작품 속에서 프로이드의 명성에 묻힌, 그러나 다만 잠재력이 대단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이 작품의 야심 중 하나였던 프로이드와 융의 애증관계, 보다 정확하게는 결별의 계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주인공인 스트래섬 영거는 프로이드나 융보다 높은 정신분석학의 경지에 이른 인물도, 지미 리틀모어만큼이나 전문적인 범죄수사기술을 가진 인물도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현명하게 사건을 해결함으로서 이 작품에 대한 작가 제드 러벤펠드의 견해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심오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이론들을 알기 쉽게 접하려는 다분히 지적인 의도로 이 작품을 선택한다면, 십중팔구 실망과 아쉬움으로 돌아서기 쉽다. 550페이지를 훌쩍 넘길 정도로 단권소설로서는 적지 않은 분량 속에서 소개되는 프로이드의 이론들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게다가 융의 새로운 발상들은 단지 몇 문장의 언급들로만 추정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추리소설이라는 본래의 장르로서는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이며 32개국의 출간이 예정되어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요란한 광고문구를 의심하게 할 만큼 전형적인 미국의 추리소설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어본다면, 왜 영화계에서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본 플롯 자체는 진부한 음모론과 배신, 모략이다. 거기에 미국 소설에서 지겹게 등장하는 비밀결사라는 카드나, 비밀통로와 같은 장면을 맞닥뜨리고 나면 작품 속에 살고 있는 프로이드가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말을 예측하게 하고 그 결말을 설명하는 장치로서 자주 등장하는 햄릿의 ‘to be or not to be'라는 대사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플롯과 잘 어울리지만, 주인공이 이 문구를 해석하는 방식이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커다란 감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기본적인 배경이나 주요 사건의 전개가 (비록 시간적인 전후관계는 상당부분 허구적이라하더라도) 실제 사실에 기반하여 구성되어졌다는 점은,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부딪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조우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소설이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허구와 사실의 명확한 경계를 염두해 두어야 하고, 다만 사실의 극적인 차원으로서 허구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올해의 초판본이니만큼 잘못된 글자나 어색한 표현들은 잦은 편이어서, 한 자, 한 자, 고쳐가며 읽기에 다소 분주하였다. 미려한 미국식 서술방식은 1909년의 미국을 멋지게 표현하는데 상당히 매력적이었는데, 이를 테면 다음의 로즈와 브릴의 대화는 필자로 하여금 탄성을 금치 못하게 한 것이었다.

“여긴 미국이에요. 젊은이들이 무얼 위해서 게티스버그에서 죽었겠어요?”
모든 노예제가 결국 임금 지급형 노예제가 될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끝]

Aladdin  |  2007/07/26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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