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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 10점
은희경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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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것, 그것이 내가 이번 여행에서 기대하는 유일한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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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은 하나의 장르라는 신형철의 극찬이 아니었대도 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는 데에 그리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좀더 냉정해지자면, 은희경은 은희경이고 공지영은 공지영이며 신경숙은 신경숙, 전경린은 전경린이다.

은희경 특유의 냉소와 위악. 그것은 곧 인간의 고독을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인간의 고독. 유진, K, 소녀B, M 그리고 두 명의 나. 그들은 모두, 집요하게 원점 O에서 P점의 좌표를 찾던 P선배의 다른 이름이다. 사실은 모두가 슬픈 사회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더듬고 있는 건 아닐까. 때론 회피하면서, 가끔은 절망하면서, 또 항상 씩씩함을 가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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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ː거[過去] 명사
없으면 그럭저럭 아쉬우나 잘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몇 번이고 고민하다가 결국엔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먼지 가득한 창고.
회상[回想] 명사
불현듯 그 창고 속 무언가가 당장 있어야 할 것처럼 꿈에라도 나오는 까닭에 자다 나온 차림에라도 온 데를 뒤져서 기어코 찾아낸 무엇. 먼지를 탁탁 털어 손으로 쓱쓱 문질러 보고는 슬며시 짓는 안도의 미소.

그러므로 누군가의 과거, 어둡고 쾌쾌하고 어지럽혀진 과거라는 창고 속에서 언제고 떠올려지지 않은 채 방치된 선택받지 못한 그의 다른 이름들.

예전엔 무얼 하셨어요, 라는 말은 당신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요, 라는 내 최선의 제스처다. 거의 언제나, 이력서 문구에 조사와 동사만을 인색하게 보탠 대답이 돌아올 것을 잘 알면서. 그 짧은 이력에 함축된 젊은 그의 시간을 마음껏 상상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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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의 코스모나츠

제6장 잘 가라, 내 청춘
스물일곱살의 소련 중위 유리 가가린은 아침 아홉시쯤 지구를 출발했다. 인류가 우주 속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동쪽’이라는 뜻의 1인승 비행선 보스또끄 안에서 가가린은 우주복을 통해 산소를 마셨다. 우주공간에 이르자 그는 모태 속의 태아처럼 유영했는데 태어날 준비를 하는 아기처럼 가가린 역시 숨을 죽인 채 팔을 내저었다. 지구로부터 수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깊은 암흑 한가운데에 홀로 떠 있는 가가린은 이미 자신이라고 하는 존재로부터 이탈해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둡고 가벼워서 거의 허무에 가까웠다. 불안하고 고독했다. 그때에 유리 가가린의 눈앞에 빛을 머금은 행성이 나타났다. 검은 허공으로 가득 찬 우주 한가운데 신비롭게 떠 있는 아름다운 별. 가가린은 전율했다. 나는 저 별을 보기 위해서 우주를 뚫고 그렇게 먼 거리를 가로질러 왔던 것일까. 마침내 유리 가가린은 자신이 떠나왔으며 그리고 다시 태어나게 될 별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1961년 4월 12일, 지구는 푸른빛이다.
http://wooyoon.net/tt2008-04-20T00:56:080.31010
Aladdin  |  2008/04/20 09:56
살인의 해석
제드 러벤펠드 지음, 박현주 옮김/비채


  지나간 시간에 대한 재해석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숨 쉬게 하고 분노로 일그러지게 하고 사소한 것들에게조차 웃음 지을 수 있게 만든다. 더욱이 그러한 사람이 경탄해마지않는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나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 7. 26~1961. 6. 6) 정도라면, 이들의 이름만으로도 이 작품을 선택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살인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Murder)』은 프로이드 정신분석학의 주요 이론들과 프로이드-융의 애증관계를 기본 모티브로 하여 전형적인 추리소설 플롯을 가미한 장편소설이다. 1909년 미국의 연쇄살인사건을 때마침 클라크대학의 명예박사 수여식으로 방미(訪美)해있던 프로이드와 융이 직접 분석한다는 흥미로운 설정이 자극적인 기존 추리소설들에 지쳐 있던 지적인 독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기존의 추리소설들이 추구하던 지나친 폭력성․잔혹성에 비하여는 상당 부분 신사적인 구성을 자임함과 동시에 플롯의 대부분을 20C 벽두의 미국을 마치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현실적인 묘사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철학을 풀어쓰는데 주력하고 있다.

  작품 속의 프로이드는 인간적이다못해, 범인(凡人)들만큼이나 결함을 지닌 인간이다. 융은 이 작품 속에서 프로이드의 명성에 묻힌, 그러나 다만 잠재력이 대단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이 작품의 야심 중 하나였던 프로이드와 융의 애증관계, 보다 정확하게는 결별의 계기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주인공인 스트래섬 영거는 프로이드나 융보다 높은 정신분석학의 경지에 이른 인물도, 지미 리틀모어만큼이나 전문적인 범죄수사기술을 가진 인물도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 사이에서 가장 현명하게 사건을 해결함으로서 이 작품에 대한 작가 제드 러벤펠드의 견해를 대변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심오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이론들을 알기 쉽게 접하려는 다분히 지적인 의도로 이 작품을 선택한다면, 십중팔구 실망과 아쉬움으로 돌아서기 쉽다. 550페이지를 훌쩍 넘길 정도로 단권소설로서는 적지 않은 분량 속에서 소개되는 프로이드의 이론들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게다가 융의 새로운 발상들은 단지 몇 문장의 언급들로만 추정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추리소설이라는 본래의 장르로서는 ‘뉴욕타임스와 아마존닷컴의 베스트셀러’이며 32개국의 출간이 예정되어 있고,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라는 요란한 광고문구를 의심하게 할 만큼 전형적인 미국의 추리소설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어본다면, 왜 영화계에서 이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기본 플롯 자체는 진부한 음모론과 배신, 모략이다. 거기에 미국 소설에서 지겹게 등장하는 비밀결사라는 카드나, 비밀통로와 같은 장면을 맞닥뜨리고 나면 작품 속에 살고 있는 프로이드가 안쓰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말을 예측하게 하고 그 결말을 설명하는 장치로서 자주 등장하는 햄릿의 ‘to be or not to be'라는 대사는 이 작품의 전체적인 플롯과 잘 어울리지만, 주인공이 이 문구를 해석하는 방식이 모호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커다란 감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작품의 기본적인 배경이나 주요 사건의 전개가 (비록 시간적인 전후관계는 상당부분 허구적이라하더라도) 실제 사실에 기반하여 구성되어졌다는 점은, 이 작품을 읽는 내내 부딪치게 되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조우하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전기소설이나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을 대함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허구와 사실의 명확한 경계를 염두해 두어야 하고, 다만 사실의 극적인 차원으로서 허구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올해의 초판본이니만큼 잘못된 글자나 어색한 표현들은 잦은 편이어서, 한 자, 한 자, 고쳐가며 읽기에 다소 분주하였다. 미려한 미국식 서술방식은 1909년의 미국을 멋지게 표현하는데 상당히 매력적이었는데, 이를 테면 다음의 로즈와 브릴의 대화는 필자로 하여금 탄성을 금치 못하게 한 것이었다.

“여긴 미국이에요. 젊은이들이 무얼 위해서 게티스버그에서 죽었겠어요?”
모든 노예제가 결국 임금 지급형 노예제가 될 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끝]

Aladdin  |  2007/07/26 21:34
여자마흔다섯
김수현 지음/여원출판국






  1991년에 초판되어 1992년에 중판된 여원출판국에서「우리시대의 전작총서33」시리즈로 세상에 나온 김수현 장편소설『여자마흔다섯』. 사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를 거쳐 자리잡던 유수의 여류 소설가보다는 다소 건조한 문체에, 전개에 있어서는 싱겁기까지 하지만, 이 작품은 이미 그가『사랑과 야망』이나『청춘의 덫』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을 집필한 이후의 작품이다.

  부모님의 책장을 고스란히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작품들이 새파란 내 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걸까. 책날개의 샤프한 컬러사진 속에는 아주 큰 하얀 와이셔츠를 걸치고 얼굴 반만한 안경을 쓴 40대 전후의 여인이 있다. 백발의 노장이 되어 방송가를 종횡무진하는 지금의 그보다 젊은 그는, 얼굴 가득히 이미 이런 출판용 프로필 정도는 익숙하다는 표정을 하고 그러고도 왠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어 아침 댓바람부터 한껏 꾸민 퉁퉁되는 아줌네만치로 복잡한 표정을 하고 섰다.

  수식이 적고 가벼운 문체. 문장의 길이도 짧고 문학적 표현을 짜내느라 설픈 표현들이 없다. 흔히 소설 속에서 극적인 전개의 장치가 되곤 하는 커다란 갈등의 전조나 큰 쇼크같은 것도 없고 따라서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감동의 기제도 없다. 책 표지에 인용된 본문의 문구라면 으레 지들이 하는 로맨스 쯤인, 이제서야 진정한 사랑을 찾았다는 불륜의 스펙터클이라고 오해하기 쉽겠지만.

  일상의 섬세함을 사랑하는 탓에 유난히 여류 소설가들의 작품을 즐기는 본인은 때로 진부한 설정에 학을 뗄 때도 있다. 어찌 보면 이 작품은 이 진부한 설정의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륜이라는 파국적 경험에 대하여 순응해 가는 인물을 지켜보는 것보다는 불편하지 않다.

  이 작품이 기존의 그의 작품들이 가지는 복잡한 문학적 장치들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더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소설의 전개를 독자가 미리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의 이러한 단조로운 구성이 작품의 마지막까지 이렇다할 반전도 가지지 못하고 독자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말이 맺어져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작품의 주제가 그러한 탓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정 내의 역학관계가 다소 과장되어 있고 작품 전반적으로 밋밋한 느낌을 주며, 심지어 경애의 외부 인물들도 이러한 설정에서 주변인 정도로만 머물러 변화를 줄 수 있는 요인이 한정된다는 점, 그리고 '여자마흔다섯'이라는 어떤 상징적인 설정에 있어서 그 특정한 시점을 어떤 전환의 시점으로 승화시키기보다는 지극히 수동적인 변화로 머물렀다는 점 등이 왠지 모르게 개운치 못한 감상을 남기게 한다.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 상당 수가 현재는 시중에서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오늘은 유난히 씁쓸하게 다가온다.
Aladdin  |  2007/04/23 12:58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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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 중에는 세상의 인연이 다 번뇌라며 강원도 어느 절로 들어가다가, 시외버스 안에서 군인 옆자리에 앉게 되어 두 달 만에 결혼한 애가 있다. … (그) 군인과 결혼한 친구는 결혼한 지 1년도 안돼 총기사고로 남편을 잃었다. 그녀는 언젠가 강원도로 떠날 때처럼 또 사람이 싫어졌다며 자동응답 전화기를 사러 나왔다. 그러나 전화를 해보면 언제나 벨이 세 번도 울리기 전에 그녀가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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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책들은 왜 하나같이 해서는 안될 사랑을 하거나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거나 오래된 사랑을 하고 있을까. 유부남과 사랑을 하고 임신을 하고 중절수술을 하고. 애절하게도 사랑했던 사람이 실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였다거나 그 충격으로 자살을 했다거나. 이별, 망각, 죽음과 같은 것들은 언제나 소설책 속에 집요하게 달라붙어있다.

  기껏 한숨을 쉬며 읽어놓고 그간의 읽은 소설책들을 싸잡아서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영화에 나오건, 활자로 찍혀 책에 쓰여 있건, 누가 봐도 충격적이거나 비난받아 마땅할만한 일들이 실은 우리가 사는 세상 도처에 일상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1999년 초판 되어 같은 해 중판된 1999년판. 이 책은 2000년까지 중판되다가 2006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다. 빠스떼르나끄가 했고 그 이전에는 A.S. 그리보예도프가 했다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가볍고’, ‘날렵하고’, ‘재미있다’는 은희경의 소설은 사실 조금 어렵다고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활자 자체는 수월하게 읽히고 그럴싸한 감동도 얻을 수 있겠지만,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있어서 본인과 같은 비전문가에게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즉, 은희경 특유의 ‘농담’이 본인에게는 쉽지만은 않았다.

  은희경의 가족이나 결혼 제도에 대한 부정적 포즈가 실은 그것들에 대한 숭고함을 방증한다는 방민호의 해설은 타당하다. 또한 이러한 은희경 특유의 허무주의, 제도에 대한 패배감, 인간성에 대한 회의가 특유의 ‘농담’으로 은유되고 때로는 ‘서정’이라는 미망에 빠져든다는 지적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긴 해설 속에서 본인이 동감했던 부분은 이것 뿐이다. 특히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해설은 난해하기도 하였거니와 순수한 독자로서는 불편하기까지 하였다)

  한 편,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순응적이거나 적어도 적극적으로 체제에 대항하지 않는다. 현실의 권력구조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거부감이 없고, 등장인물은 투덜댈지언정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고자 도모하지는 않는다. 다만, 현실에 순응하거나 혹은 체념하며 과거의 회상에 담대해 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따라서 용서나 참을 수 없는 변절, 저항과 같은 감동의 기제들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이 작품은 구절구절로 보자면 독자대중의 공감을 부를만한 대목들이 많은데, 그래서인지 무슨 시구처럼 일부의 구절이 인용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것들 중 대부분이 그 구절만을 읽기에는 감동스러우나 작품에 있어서는 단절된 어느 한 구절이 아니라 전체 맥락을 통해서 함축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Aladdin  |  2007/03/14 18:35
억새풀 1
임선영 지음/대현문화사


  작가 임선영. 1948년 여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한때 충남의 몇몇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여성중앙」르포 작가로 문단에 데뷔. 소외받는 우리 이웃들의 삶의 현장을 파헤친 인간소설의 작가로 세간에 평가된다. 1987년에『헬로우미미①』,『별난여자』, 1988년에『희나리』,『귀휴』,『5계절』, 1989년에『탈출여행』,『행복한 여자』, 1990년『헬로우미미②』, 에세이집『이별수첩』등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수면 위에 뜬 달』, 그 유명한『억새풀』과『수수꽃다리』,『바람꽃』,『달과 강』,『상처』,『고리』,『영원한 침묵』,『민들레꽃 하늘에』,『보랏빛 수채화』등이 그의 주요 작품이다.

  억새풀은 억새를 일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으악새 역시 억새를 일컫는 말로 경기도 방언이다. 억새는 여러해살이풀로, 산과 들에서 자라며 주로 은빛이나 흰색을 띄고 간혹 얼룩무늬를 가진 것도 있다. 뿌리가 굵고 옆으로 퍼져 나가며, 땅속줄기가 짧고 단단하면서도 마디가 촘촘하다. 줄기는 속이 차 있고 성기며 곧다. 잎이 좁고 길며 선형이고, 끝이 점점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많이 있어 손을 베기 쉽다. 흰노랑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도 반쯤만 고개를 숙인다. 억새는 주로 잡초보다도 더한 시련을 가진 서글픈 존재로 묘사된다.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언제나 슬픔을 안고 있고, 순탄하지 않은 생이라도 이를 초탈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억새가 이렇게 상징되는 것은 무른 습지에서 서식하는 갈대와는 달리 척박한 산과 들에서 서식하고, 그 대가 굵으면서도 잎에 가시를 가지고 있어 뻣세기 때문에 지붕을 엮는 데 쓰거나 어린잎을 말려서 소의 먹이로나 쓰여 왔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출판 장원에서 1991년 초판되어 그해 중판된, 올해로 꼭 16년 된 임선영의『억새풀』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어머니가 서점으로 달려가 고르셨던 책이다. 그동안 수차례의 이사 속에서도 여전히 책장에 남겨져 있어, 본인으로서는 제목만큼이나 억세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04년에 대현문화사에서 개정판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초판, 개정판 모두 전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억새풀』은 박경리의 1962년작,『김약국의 딸들』에서 느껴지는, 어떤- 삶의 통한과 같은 감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왠지 모르게 애환이라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될 수 없는, 끈적끈적하고 불운하면서도 허무한 인간들의 삶은- 앞이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한없이 가을비가 쏟아지는 싸늘한 어느 날 우산도 없이 번화가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스물 너댓된 촌뜨기만치로. 돌아갈 수도, 다시 살아갈 수도, 그대로 그만 둘 수도 없는 삶의 고단함.

『김약국의 딸들』에서 한 집안의 몰락은 충격적이면서도 허망하기까지 한다면,『억새풀』은 단순한 비극이기보다는 불행의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다시 그 씨앗을 뿌리는 비극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잔혹한 인연으로 이어진 그 고리는 모든 것을 분노하게 만들면서도 끝내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생의 집착으로부터의 허무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수한 잘못된 인연들로부터 비롯되는 ‘업(業)’의 고리는 주로 성(性)적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순간의 욕망이 관계를 낳고 지난, 혹은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재창출되는 구조이다. 그리하여 이미 욕망에 대한 참회에 이를 때에는 그로 인한 비극이 이제 막 몽우리졌을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김약국의 딸들』만큼이나 처참하지는 않다. 등장인물들이 종국에는 이 업의 단절로서 출가를 선택하는 데에 반해, 오히려 독자들은 인연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된다. 즉, 인연을 맺는다는 것의 귀중함과 신중함을 극단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단편적인 인간관계의 인과(因果)가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삶의 현장을 지나면서 느끼는 공허함.

  다만, 불편했던 점은 불행의 섬세한 묘사만큼이나 잔인하게 등장여성들의 삶이 짓밟혀있고 끝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나오는 은애의 출가는 자칫 도흠과 준영의 출가와 동등하게 평가될 수 있으나 부영이라는 부(父)에 대한 업의 연장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오히려 작품의 리얼리티 면에서 타당할 것이라는 자위가 허무하게 다가온다.

  1991년 초판 직후 같은 해 중판된 책이어서 오타도 있고,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이 중간에서 슬쩍 바뀌기까지 했던 점은 아쉬운 일이다. 또 제책상태가 좋지 않아 결락되거나 책장이 분리되어 당황한 기억이 있다. 그래도 16년 전의 출판본임에도 한자의 사용이 적어 책이 부드럽게 읽히고, 문장 역시 다소 구식이면서도 그 운치가 있어 지나간 책을 읽는 이를 즐거움으로 설레게 한다.
Aladdin  |  2007/03/09 00:50
1984년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문예출판사


덧없는 꿈이었다네,
4월의 꽃잎처럼 스러져 버렸다네,
눈짓으로 말과 꿈으로 흔들어 놓고
내 마음 앗아가 버렸다네.



1984년. 그러나 이 정확한 숫자는 윈스턴이 생각해 온 것이다. 명확히 몇 년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윈스턴 스미스. 진리성 기록국에서 과거를 조작하는 일을 한다. 역사는 당에 의해 재조작되는 과거다.
즉, 그의 표현대로 과거의 사건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자료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그 과거는 기록된 자료와 기억이 뭉친 것이다.

당은 인민들에게서 자유와 평등과 같은 관념을 삭제하고,
철저히 안정적인 당의 체계에 복종케 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조작, 선전, 감시, 고문을 자행한다.
있지도 않은 대외전쟁을 존재하는 것처럼 선전하여 즉흥적인 애국심을 만들어내고,
Big Brother의 대형 플랑이 온 거리, 집집마다 나붙어 있으며,
당원이 있는 곳 어디나 텔레스크린이나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있다.
원칙적으로 당원은 여가가 없고 침대에 들 때 외에는 혼자 있어서는 안된다.
일하고 먹고 잘 때 외에는 단체오락이 끼어야 하며-
고독한 취향을 보이는 것은, 하다못해 혼자 걷는 일조차 위험하다.

윈스턴은 생각한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다.
그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이에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는 옳다! 그들이 틀렸고 내가 옳다.
명백한 것, 순결한 것, 그리고 진실한 것은 지켜져야 한다.
자명한 것은 자명하다.

그가 줄리아를 만난 건, 운명적이었다.
줄리아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한 순간 그는 살아있고 싶은 욕망이 솟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칫하면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어물쩡 시간이 지나는 사이 그녀가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참을 수 없이 조급해졌고, 불안해졌다.

그녀를 만났고, 그는 이것이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충분히 견딜 만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용케 연기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앞당기기도 하는 것이었다.
결말이 시작에 포함되어 있대도, 윈스턴은 줄리아를 사랑했다.

사상경찰이 윈스턴과 줄리아를 끌고 간 애정성 어딘가에서, 갓을 쓴 등이 켜진 막힌 방에서,
줄리아는 없고 윈스턴만 있는 그 방에서, 오브라이언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네가 인간이라면, 자네는 마지막 인간이야."

윈스턴은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 것이야말로 곧 자유라고 생각했다.
불합리하고 소모적인 영사(영국사회주의)의 체계를 증오하면서 죽어가는 것.
그것만이 당의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이었으며, 마땅히 해야 할 사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결국 윈스턴은 허무주의에 빠져드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아직 살아있고, 그가 죽고 죽지 않은 전후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의 체제는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무엇 때문에 당을, Big Brother를 증오하며 죽어간단 말인가.

그렇다.
모든 일은 그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오세아니아 세계 밖에서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배신하고, 당의 적이라 하면 그는 응당 그럴만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사랑하면서 죽어가는 것.
그리하여 결국은 체제에 순응하는 비극.

2부의 로맨틱하기까지 한 사랑도 결국 이 비극적 결말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가장 사랑하는 그 무엇도 변해가는 잔학한 죽음의 평화.



##

이 책은 조금 어렵다.
George Orwell의 원작 자체도 어렵게 쓰여졌지만,
번역도 가볍게 읽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다.
- 하여 생각컨대, 이 책(번역서)이 68년에 초판이 나오고 93년/99년/06년에 각각 출판이 되었는데,
첫 번역 이후로 전면적인 개정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이 책을 정치철학적으로 평가할 때,
단순히 생각하면 전체주의에 대한 악랄한 비판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실질적으로는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역시 비극적 결말이라는 점이 충격적이랄 수 있는데,
이 역시도 그의 냉소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으로 보여진다.

부록으로 첨부되는 '신어의 원리'는 전형적인 영어식 사고여서 우리로서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그의 사고가 얼마나 확장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어 감탄하게 한 대목이었다.

1984라는 숫자는 그가 집필을 끝낸 해인 1948년의 뒷자리 두 수를 바꾼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자가 태어난 해라는 해석이 가장 정확하다고 보는 편이다. ^^
Aladdin  |  2007/01/28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