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새풀 1
임선영 지음/대현문화사


  작가 임선영. 1948년 여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한때 충남의 몇몇 중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여성중앙」르포 작가로 문단에 데뷔. 소외받는 우리 이웃들의 삶의 현장을 파헤친 인간소설의 작가로 세간에 평가된다. 1987년에『헬로우미미①』,『별난여자』, 1988년에『희나리』,『귀휴』,『5계절』, 1989년에『탈출여행』,『행복한 여자』, 1990년『헬로우미미②』, 에세이집『이별수첩』등을 발표하였다. 이 외에도『수면 위에 뜬 달』, 그 유명한『억새풀』과『수수꽃다리』,『바람꽃』,『달과 강』,『상처』,『고리』,『영원한 침묵』,『민들레꽃 하늘에』,『보랏빛 수채화』등이 그의 주요 작품이다.

  억새풀은 억새를 일상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으악새 역시 억새를 일컫는 말로 경기도 방언이다. 억새는 여러해살이풀로, 산과 들에서 자라며 주로 은빛이나 흰색을 띄고 간혹 얼룩무늬를 가진 것도 있다. 뿌리가 굵고 옆으로 퍼져 나가며, 땅속줄기가 짧고 단단하면서도 마디가 촘촘하다. 줄기는 속이 차 있고 성기며 곧다. 잎이 좁고 길며 선형이고, 끝이 점점 뾰족하며 가장자리에 날카로운 갈고리 모양의 가시가 많이 있어 손을 베기 쉽다. 흰노랑 꽃이 피고 열매가 익어도 반쯤만 고개를 숙인다. 억새는 주로 잡초보다도 더한 시련을 가진 서글픈 존재로 묘사된다. 쉽게 무너지지 않지만 언제나 슬픔을 안고 있고, 순탄하지 않은 생이라도 이를 초탈해 살아가는 존재이다. 억새가 이렇게 상징되는 것은 무른 습지에서 서식하는 갈대와는 달리 척박한 산과 들에서 서식하고, 그 대가 굵으면서도 잎에 가시를 가지고 있어 뻣세기 때문에 지붕을 엮는 데 쓰거나 어린잎을 말려서 소의 먹이로나 쓰여 왔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출판 장원에서 1991년 초판되어 그해 중판된, 올해로 꼭 16년 된 임선영의『억새풀』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어머니가 서점으로 달려가 고르셨던 책이다. 그동안 수차례의 이사 속에서도 여전히 책장에 남겨져 있어, 본인으로서는 제목만큼이나 억세게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2004년에 대현문화사에서 개정판으로 다시 출판되었다. (초판, 개정판 모두 전5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억새풀』은 박경리의 1962년작,『김약국의 딸들』에서 느껴지는, 어떤- 삶의 통한과 같은 감상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왠지 모르게 애환이라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될 수 없는, 끈적끈적하고 불운하면서도 허무한 인간들의 삶은- 앞이 뿌옇게 흐려질 정도로 한없이 가을비가 쏟아지는 싸늘한 어느 날 우산도 없이 번화가의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스물 너댓된 촌뜨기만치로. 돌아갈 수도, 다시 살아갈 수도, 그대로 그만 둘 수도 없는 삶의 고단함.

『김약국의 딸들』에서 한 집안의 몰락은 충격적이면서도 허망하기까지 한다면,『억새풀』은 단순한 비극이기보다는 불행의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다시 그 씨앗을 뿌리는 비극의 고리를 가지고 있다. 잔혹한 인연으로 이어진 그 고리는 모든 것을 분노하게 만들면서도 끝내는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생의 집착으로부터의 허무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수한 잘못된 인연들로부터 비롯되는 ‘업(業)’의 고리는 주로 성(性)적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순간의 욕망이 관계를 낳고 지난, 혹은 새로운 인연으로 이어지는 비극이 재창출되는 구조이다. 그리하여 이미 욕망에 대한 참회에 이를 때에는 그로 인한 비극이 이제 막 몽우리졌을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작품은『김약국의 딸들』만큼이나 처참하지는 않다. 등장인물들이 종국에는 이 업의 단절로서 출가를 선택하는 데에 반해, 오히려 독자들은 인연의 소중함을 절감하게 된다. 즉, 인연을 맺는다는 것의 귀중함과 신중함을 극단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단편적인 인간관계의 인과(因果)가 절망적으로 다가오는 삶의 현장을 지나면서 느끼는 공허함.

  다만, 불편했던 점은 불행의 섬세한 묘사만큼이나 잔인하게 등장여성들의 삶이 짓밟혀있고 끝내 스스로 일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작품의 후반부에 나오는 은애의 출가는 자칫 도흠과 준영의 출가와 동등하게 평가될 수 있으나 부영이라는 부(父)에 대한 업의 연장으로서의 의미가 크다는 점에서 실망스럽다. 오히려 작품의 리얼리티 면에서 타당할 것이라는 자위가 허무하게 다가온다.

  1991년 초판 직후 같은 해 중판된 책이어서 오타도 있고,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이 중간에서 슬쩍 바뀌기까지 했던 점은 아쉬운 일이다. 또 제책상태가 좋지 않아 결락되거나 책장이 분리되어 당황한 기억이 있다. 그래도 16년 전의 출판본임에도 한자의 사용이 적어 책이 부드럽게 읽히고, 문장 역시 다소 구식이면서도 그 운치가 있어 지나간 책을 읽는 이를 즐거움으로 설레게 한다.
Aladdin  |  2007/03/09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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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13 18:05 댓글에 댓글수정/삭제
죄송합니다.
이 도서는 절판 되었습니다. ....

...

ㅠㅠ;
2007/03/13 23:19 수정/삭제
제가 읽은 것이 1991년 중판이고, 개정판도 2004년도에 나왔으니 지금은 당연히 절판되었죠. 흐흐 몇 년 지나면 또 재판되지 않을까요? 명작인데.. 헌책으로라도 꼭 읽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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