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문예출판사


덧없는 꿈이었다네,
4월의 꽃잎처럼 스러져 버렸다네,
눈짓으로 말과 꿈으로 흔들어 놓고
내 마음 앗아가 버렸다네.



1984년. 그러나 이 정확한 숫자는 윈스턴이 생각해 온 것이다. 명확히 몇 년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윈스턴 스미스. 진리성 기록국에서 과거를 조작하는 일을 한다. 역사는 당에 의해 재조작되는 과거다.
즉, 그의 표현대로 과거의 사건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기록된 자료와 인간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며, 그 과거는 기록된 자료와 기억이 뭉친 것이다.

당은 인민들에게서 자유와 평등과 같은 관념을 삭제하고,
철저히 안정적인 당의 체계에 복종케 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조작, 선전, 감시, 고문을 자행한다.
있지도 않은 대외전쟁을 존재하는 것처럼 선전하여 즉흥적인 애국심을 만들어내고,
Big Brother의 대형 플랑이 온 거리, 집집마다 나붙어 있으며,
당원이 있는 곳 어디나 텔레스크린이나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있다.
원칙적으로 당원은 여가가 없고 침대에 들 때 외에는 혼자 있어서는 안된다.
일하고 먹고 잘 때 외에는 단체오락이 끼어야 하며-
고독한 취향을 보이는 것은, 하다못해 혼자 걷는 일조차 위험하다.

윈스턴은 생각한다.
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유이다.
그 자유가 허용된다면 그 밖의 모든 것은 이에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나는 옳다! 그들이 틀렸고 내가 옳다.
명백한 것, 순결한 것, 그리고 진실한 것은 지켜져야 한다.
자명한 것은 자명하다.

그가 줄리아를 만난 건, 운명적이었다.
줄리아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한 순간 그는 살아있고 싶은 욕망이 솟았다.
그렇지만, 그는 자칫하면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렇게 어물쩡 시간이 지나는 사이 그녀가 마음이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참을 수 없이 조급해졌고, 불안해졌다.

그녀를 만났고, 그는 이것이 죽음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충분히 견딜 만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죽음을 용케 연기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앞당기기도 하는 것이었다.
결말이 시작에 포함되어 있대도, 윈스턴은 줄리아를 사랑했다.

사상경찰이 윈스턴과 줄리아를 끌고 간 애정성 어딘가에서, 갓을 쓴 등이 켜진 막힌 방에서,
줄리아는 없고 윈스턴만 있는 그 방에서, 오브라이언은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네가 인간이라면, 자네는 마지막 인간이야."

윈스턴은 그들을 증오하면서 죽는 것이야말로 곧 자유라고 생각했다.
불합리하고 소모적인 영사(영국사회주의)의 체계를 증오하면서 죽어가는 것.
그것만이 당의 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이었으며, 마땅히 해야 할 사명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결국 윈스턴은 허무주의에 빠져드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아직 살아있고, 그가 죽고 죽지 않은 전후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의 체제는 지극히 합리적인 것이다.
무엇 때문에 당을, Big Brother를 증오하며 죽어간단 말인가.

그렇다.
모든 일은 그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오세아니아 세계 밖에서 국제전이 벌어지고 있다면, 전쟁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배신하고, 당의 적이라 하면 그는 응당 그럴만한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종국에는 사랑하면서 죽어가는 것.
그리하여 결국은 체제에 순응하는 비극.

2부의 로맨틱하기까지 한 사랑도 결국 이 비극적 결말을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가장 사랑하는 그 무엇도 변해가는 잔학한 죽음의 평화.



##

이 책은 조금 어렵다.
George Orwell의 원작 자체도 어렵게 쓰여졌지만,
번역도 가볍게 읽기에는 다소 난해한 부분이 있다.
- 하여 생각컨대, 이 책(번역서)이 68년에 초판이 나오고 93년/99년/06년에 각각 출판이 되었는데,
첫 번역 이후로 전면적인 개정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

이 책을 정치철학적으로 평가할 때,
단순히 생각하면 전체주의에 대한 악랄한 비판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실질적으로는 오늘날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역시 비극적 결말이라는 점이 충격적이랄 수 있는데,
이 역시도 그의 냉소를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으로 보여진다.

부록으로 첨부되는 '신어의 원리'는 전형적인 영어식 사고여서 우리로서는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그의 사고가 얼마나 확장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어 감탄하게 한 대목이었다.

1984라는 숫자는 그가 집필을 끝낸 해인 1948년의 뒷자리 두 수를 바꾼 것이라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자가 태어난 해라는 해석이 가장 정확하다고 보는 편이다. ^^
Aladdin  |  2007/01/2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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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7 13:39 댓글에 댓글수정/삭제
언젠가부터 이러한 책 포스팅이 무척이나 부러워졌습니다..
남들처럼 주5일제로 생활하는데도 불구하고.. 피곤이라는 변명속에
책을 안 읽은지 꽤 됐네요..
2007/02/07 16:00 수정/삭제
저도 사실 쟁여놓은 지는 꽤 되었는데.. 작정하고 읽은 책입니다. ㅡ.ㅡ
가끔은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사치스럽다고 느껴지게 되서리...
그러다보니 서평은 아주 저질인데, 용기가 가상하여(사실은 쓴 것이 아까워서) 올려놨습니다. ^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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